LG전자와 유상증자, 그리고 돛단배와 항공모함
LG전자 생산기술원의 한 관계자는 올 상반기 나와 만나 BJ쿠가 CEO로 와서 살맛이 난다고 했다. 전임 CEO는 마케팅만 챙기고 생산 및 제조는 등한시했었는데 BJ쿠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얼마 전 LG전자가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유상증자로 끌어모은 자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 세부내역을 공개한 걸 보고선 불현듯 그의 발언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휴대폰 사업 경쟁력 강화에 유상증자로 마련한 자금의 절반 이상을 쏟아붓는다는 내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나는 LG전자가 생산기술원에 1000억원 이상을 투입한다는 발표에 관심이 갔다.
제조업에 강점을 가진 LG전자고 삼성전자다. 본업을 버리면 제조업체는 더 이상 제조업체가 아니게 된다. 제조업 하던 업체가 제조업을 버리고 소프트웨어와 마케팅으로 이를 본업으로 삼는 기업과 싸워 이길 것이란 생각은 허황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BJ쿠는 LG전자를 올바른 방향으로 일관된 정책으로 이끌고 있다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그 이상이 필요하다. 항공모함은 돛단배처럼 쉽게 방향을 바꿀 수 없다 했는데, 어쩌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바로 항공모함을 돛단배처럼 모는 일일 것이다. LG전자가 지금의 팬택 마냥 스마트폰을 냈다면 실적 개선은 더 빨라졌을 지도 모른다.
권희원 부사장은 고려대 강연에서 "시장이 형성된 이후 뒤따라 들어가 점유율을 높이는 것도 굉장히 효율적인 경영 전략"이라 했는데 지금 LG전자를 제대로 표현했다. 머뭇거리다 잃는 것이 너무 많다. 내 기술은 초라하고 남의 기술은 뭔가 있는 것처럼 보는 콤플렉스는 버릴 때가 됐다.
정말 독해졌는지 뒤돌아볼 시기도 됐다. 삼성전자의 인사 정책을 보면 진정한 독함이란 무엇인 지 알 수 있다. 삼성전자 출신 LG전자 직원들과 만나며 조직이 사람을 바꾼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 또한 사람이다. 본업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면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